나가토 유키/인기투표 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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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무위키+상위문서.png](http://obj-sg.the1.wiki/d/82/8a/0bb4602568cf2876f4e245107c482e7872ef091d5e44bbef84992a5b4c06186a.png)
1. 개요[편집]
나가토 유키의 인기투표 전반에 걸친 행정과 전적을 서술한 문서.
2. 위상[편집]
유키는 폭발기(2006~2009) 모토에서 가장 거대한 진영이었던 쿄애니 3대장의 수장으로, 당시 명예 왕조를 수립했던 샤나와 4년에 걸쳐 패권 경쟁을 벌여 무승부를 거둔 명실상부한 폭발기의 2인자이자 시대 맹주이다. 그녀와 쿄애니 진영이 샤나의 독주를 성공적으로 억제한 덕에 폭발기에 유래없는 세력 균형이 도래하여 모에 토너먼트 8룡이 형성될 수 있었다.
또한 유키는 교체기(2010-2011)의 1차 대멸종을 견디고 생존한 몇 안되는 캐릭터 중 하나이며, 아키야마 미오의 모토 통일을 거치면서 일어난 샤나 - 미코토 사이의 왕조 교체를 바로 앞에서 직관하였다.[1]
비록 2010년에 같은 쿄애니 진영의 케이온!이 만인지상의 위치에 오른 탓에 커리어 로우를 기록하긴 했으나, 이듬해인 2011년에 소실 방영의 버프를 받아 그 케이온을 제치고 다시 한번 쿄애니의 대표 캐릭터 위상을 되찾았으며, 당시 막 왕조를 수립한 미사카 미코토에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진영 캐릭터[2] 로 맹활약을 펼쳤다.
후술할 국사모와 모토 전반에서의 활약 덕에, 샤나, 카츠라 히나기쿠, 히이라기 카가미, 페이트 테스타로사, 사카가미 토모요, 현랑 호로, 아이사카 타이가와 함께 거의 대부분의 메이저 대회에서 강세를 보이는 모토계 8룡으로 하루히 대신 꼽혔었다.[3]
2.1. 하루히와의 전적[편집]
명백한 작품의 1인자로, 하루히와 바교해 압도적으로 높은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모에 토너먼트에서 나가토가 스즈미야 하루히보다 높은 성적을 가지고 있음을 통해 입증된다. 우선 메이저 모토에서 최고 커리어만 따져보면, 국사모는 나가토(준우승>8위), 사이모에는 나가토(8강>조별리그), 최모토는 하루히(8강<4강), BGC는 하루히(64강<16강), BLM은 나가토(32강>조별리그)가 우세하다. 여기에, 둘 다 3차 예선에서 광탈한 애캐토 2015마저 득표를 나가토가 더 많이 했다. 고로 1대 1 팬덤 싸움에서도 나가토가 하루히에 비해 근소하게 전적 전반이 앞선다고 볼 수 있다.
하루히와의 메이저 모토 1대1 전적에서도 우위를 점하고 있다. 06~12시즌 동안 둘은 3대 1세대 메이저 모토에서 12차례 맞붙었는데, 차례대로 06 사이모에(1112-991, 승), 06 최모토(605-612, 패), 08 국사모(395-219, 승), 08 국사모(593-562, 승), 09 사이모에(397-149, 승), 09 최모토(1698-1058, 승), 09 국사모(1415-1752, 패), 09 국사모(1429-1119, 승), 10 국사모(2578-2202, 패), 10 국사모(4128-3728, 승), 11 국사모(4544-4029, 승), 12 국사모(2678-2648, 승)으로, 종합 10:2의 상대 전적을 가지고 있다.
2.2. 진영 싸움의 피해자[편집]
유키는 쿄애니 3대장의 수장이지만, 진영의 수혜를 거의 받지 못했을 뿐더러, 오히려 진영 탓에 주요 대회에서 툭하면 다른 작품들의 저격 대상이 되어 커리어를 말아먹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하였다. 대표적으로 2006 최모토 8강 하루히전, 2007 중모토 결승 코나타전, 2008 국사모 아유/마이전[4] , 2008 국사모 결승 페이트전, 2009 국사모 4강 토모요전, 2009 최모토 8강 카가미전[5] , 2011 국사모 8강 쿠로네코전 등이 있다. 여기에 있는 모든 상대는 대결 당시 기준[6] 으로 유키와 비교해 명백히 체급이 낮았다.
3. 사이모에 토너먼트[편집]
사이모에 토너먼트 2006년 3회전(32강)에서 스즈미야 하루히(1112대 991)를, 4회전(16강)에서는 아사히나 미쿠루(994대 859) 만나 2연속 팀킬하며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의 캐릭터 중 유일하게 8강에 진출했다. 2009년에도 3회전에서 하루히와 격돌, 에루루에게 밀려 하루히와 함께 동반 탈락했지만 하루히보다 훨씬 많은 득표를 했다.[7] 하루히 시리즈의 인기가 많이 식은 2010년에는 비록 2회전(72강)에서 탈락했지만 하루히와 미쿠루는 1회전에서 탈락했기에 상당히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4. 최고모에토너먼트[편집]
최고모에 토너먼트 2006년 16강에서 쿈의 여동생을 547 대 186이라는 경이로운 수치로 꺾고 8강에 진출. 8강에서 스즈미야 하루히에게 612 vs 605(12표차)의 근소한 차이로 패배하며 탈락하고 만다. 2009년에는 공교롭게 모든 대진에서 같은 쿄애니 출신 캐릭터와 만났다. 96강에서는 미쿠루와 소실 나가토, 32강에서 아키야마 미오, 16강에서 하루히, 8강에서 히이라기 카가미를 만났다. 이 때 하루히에게는 1698 vs 1058라는 큰 표차로 승리하며 2006년의 패배를 돌려주었다. 2010년에는 하루히와 함께 사이좋게 16강에서 동반 탈락.
5. 국제 사이모에 리그[편집]
![파일:2009 topaz.jpg](http://obj-sg.the1.wiki/d/20/cb/25b715ec9ca56d58702735666c30041f30f8b7a237ffbeb92b647d334cd6cd2f.jpg)
![파일:2010 amethyst.jpg](http://obj-sg.the1.wiki/d/ac/e7/b3106ea01d90077c364c98bdb6e3c9c2772c7acafc911be2187e939ba3cb6899.jpg)
![파일:2011 amethyst.jpg](http://obj-sg.the1.wiki/d/66/35/cf4a86be8ef42e93643bfe190ebc774d7e82b14609a261eb574fc895cfdf1541.jpg)
국제 사이모에 리그는 유키가 가장 많은 성과와 업적을 남긴 모에 토너먼트이다.
5.1. 2008[편집]
2008년(1회, 대회 원년) 아쿠아마린 9승 0패, 토파즈 8승 1패, 자수정 8승 1패, 사파이어 8승 1패, 에메랄드 9승 0패, 루비 8승 1패, 다이아몬드 8승 1패로 58승 5패를 거두며 정규리그 6위에 랭크되었지만 목걸이를 획득하지 못하는 아쉬운 성과를 거뒀다.[9] 특히 아쿠아마린 기간에는 샤나에게 근소한 차이로 밀려 기간 2위로 목걸이를 따지 못해 더더욱 아쉬운 결과였다. 이후 시드 배정용 16강에서 11시드 C.C.에게 여유로운 승리(661 vs 583)를 거두며 승자조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였다. 승자조 8강에서 3시드 스즈미야 하루히를 만나 업셋 승리(562 vs 593), 승자조 4강까지 치고 올라갔으나 7시드 히이라기 카가미에게 패배(819 vs 746)하며 패자조로 내려앉았다. 패자조 4R에서 8시드 이치노세 코토미에게 21표차 진땀승(612 vs 591)을 거두며 결선 라운드 진출에 성공하였다.
![파일:2008 국사모 4위 결정전.png](http://obj-temp.the1.wiki/data/3230303820eab5adec82acebaaa82034ec9c8420eab2b0eca095eca0842e706e67.png)
![파일:2009 국사모 3위 결정전.png](http://obj-temp.the1.wiki/data/3230303920eab5adec82acebaaa82033ec9c8420eab2b0eca095eca0842e706e67.png)
![파일:2008 GF.png](http://obj-temp.the1.wiki/data/323030382047462e706e67.png)
결선 라운드의 첫 번째 매치, 4위 결정전에서 3시드 하루히, 2시드 토모요, 4시드 샤나를 차례로 꺾고 결선 라운드까지 진출한 이변의 주인공 12시드 이즈미 코나타와 격돌, 무난히 승리(445 vs 519)를 따내며 희망의 불씨를 살려냈다. 이어진 3위 결정전에서 승자조 4강에서 패배했던 히이라기 카가미와 다시 맞붙으며 3위로 탈락하나 싶었지만 리업셋(459 vs 700)을 만들어내며 티아라 결정전 진출에 기어이 성공한다! 하지만 최종 결승에서 1시드 페이트 테스타로사에게 아쉽게 패배(1220 vs 956)하며 국사모 초대 준우승자 타이틀을 얻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5.2. 2009[편집]
2009년(2회) 정규리그에서 아쿠아마린 7승 2패, 토파즈 9승 0패, 자수정 8승 1패, 사파이어 8승 1패, 에메랄드 8승 1패, 루비 9승 0패, 다이아몬드 4승 5패[10] 로 53승 10패를 거두며 7위에 랭크되었지만, 토파즈 라운드를 석권하며 첫 목걸이를 획득해냈다. 시드 배정용 16강에서 10시드 아이사카 타이가에게 접전승(2053 vs 1814)을 거두며 다시 한 번 승자조 멤버로 포스트시즌에 올랐다.
![파일:2009 SF.jpg](http://obj-temp.the1.wiki/data/323030392053462e6a7067.jpg)
![파일:2009 국사모 패자조 4R.png](http://obj-temp.the1.wiki/data/3230303920eab5adec82acebaaa820ed8ca8ec9e90eca1b02034522e706e67.png)
![파일:2009 국사모 4위 결정전.png](http://obj-temp.the1.wiki/data/3230303920eab5adec82acebaaa82034ec9c8420eab2b0eca095eca0842e706e67.png)
이어진 승자조 8강에서 또 2시드 스즈미야 하루히를 만나 지난해의 데자뷰 같은 업셋 승리(1119 vs 1429)를 거두고 샤나와 함께 2년 연속으로 승자조 4강에 올랐다. 승자조 4강에서 지난해의 쓰라린 기억이 반복되었다. 11시드 카츠라 히나기쿠를 만나 큰 차이로 업셋(1291 vs 1616)을 당하며 또 다시 승자조 결승에 오르지 못하고 패자조로 내려앉았다. 패자조 4R에서 지난해 티아라 결정전의 리매치 6시드 페이트 테스타로사와 격돌하여 지난해 결승의 리벤지에 성공(1687 vs 1536)하고 국사모 최초로 2년 연속 결선 라운드(4강) 진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4위 결정전에서 3시드 사카가미 토모요에게 근소한 차이로 패배(1156 vs 1034)하며 이번에도 티아라를 얻지 못하고 끝내 최종 4위에 머무르게 되었다.
5.3. 2010[편집]
2010년(3회) 정규리그에서 아쿠아마린 6승 1패, 토파즈 6승 1패, 자수정 7승 0패, 사파이어 6승 1패, 에메랄드 7승 0패, 루비 7승 0패, 다이아몬드 5승 2패로 44승 5패(6위)를 거두며 2008년과 동일한 순위를 기록하고 자수정 라운드에서 목걸이를 획득하며 지난해와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포스트시즌에서 사이모에, 최고모에와 비슷하게 부진을 겪고 말았다. 시드 배정용 16강은 11시드 후지바야시 쿄를 상대로 무난히 승리를 거두었으나(4026 vs 3196), 승자조 8강에서 3시드 아키야마 미오에게 패배(3384 vs 2872)하여 패자조로 일찍 떨어지고 말았다. 이어진 패자조 2R에서 12시드 산젠인 나기를 누르고(3301 vs 2945) 패자조 3R에 올랐으나, 2시드 카츠라 히나기쿠에게 지난해 승자조 4강과 꼭 빼닮은 패배(3855 vs 3113)를 당하며 그대로 탈락. 최종 7위로 내려앉고 말았다.
2011년(4회)에는 소실 방영의 버프를 받아 정규리그에서 아쿠아마린 7승 0패, 토파즈 6승 1패, 자수정 7승 0패, 사파이어 6승 1패, 에메랄드 7승 0패, 루비 7승 0패, 다이아몬드 7승 0패로 샤나와 나카노 아즈사를 꺾고 47승 2패를 기록하여 3위를 차지하는 돌풍을 일으키고, 자수정 목걸이를 다시 한번 획득하면서 샤나에 이어 두번째 목걸이 수성자 타이틀을 따내는 대활약을 펼쳤다. 이 해부터 싱글 엘리미네이션이 시행되어 시드 배정 없이 단판 토너먼트가 진행되었다. 16강에서 센조가하라 히타기를 만나 대승(5743 vs 3616)을 거두며 정규리그의 기세를 이어나가 08시즌에 버금가는 포스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8강에서 정규리그 6위 고코우 루리에게 충격의 업셋 패배(5114 vs 5606)를 당하며 최종 7위로 리타이어하고 말았다. 11시즌 정규리그에서 미사카 미코토와 타치바나 카나데를 제외한 모든 캐릭터에게 승리했기에 토파즈 7라운드에서 승리(4520-4292)했던 루리에게 진 것은 통한의 패배였다.
5.5. 2012[편집]
2012년(5회) 정규리그에서 아쿠아마린 6승 1패, 자수정 7승 0패, 루비 6승 1패, 에메랄드 6승 1패, 토파즈 6승 1패로 31승 4패를 거두며 스텔라 5위를 기록, 특히 자수정 기간에는 미사카 미코토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미코토의 스텔라 전승 1위를 저지해내는 기염을 토했다. 목걸이의 경우 토파즈/자수정 라운드에서 결정전에 진출했으나 루리와 미오에게 밀리며 4년 만에 목걸이 획득에 실패하고 말았다. 스텔라 부문 결선 16강에서 12시드 센고쿠 나데코에게 대승(4992 vs 3409)를 거두고 8강에 진출. 8강에서 4시드 아키야마 미오를 상대로 정규리그의 복수를 이루며 업셋(5045 vs 4806)에 성공하여 4강에 올랐으나, 4강에서 1시드 미사카 미코토에게 역으로 정규리그의 리벤지(5984 vs 4044)를 당하며 2012 스텔라 부문 결선을 최종 3위로 마감했다. 최종 16강에서 노바 6위 코우사카 키리노를 상대로 승리(3866 vs 5166)를 따내면서, 5년 연속 8강 진출이라는 대업을 달성하는데 성공했다.[11] 하지만 이어진 8강에서 천적 고코우 루리(노바 2위)를 만나 패배(6133 vs 4361)하며 최종 8위로 5년에 걸친 국사모 여정의 끝을 장식했다.
5.6. 2013 이후[편집]
유키는 이처럼 국사모 원년부터 다섯 시즌 내내 많은 활약을 펼쳤지만, 여타 다른 1세대 캐릭터들과 마찬가지로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했고 13시즌부터 급격한 하락세를 그리고 만다. 13시즌 정규리그에서 23승 12패로 무너지며 스텔라 13위로 추락, 스텔라 부문 결선 16강에서 4시드 아이사카 타이가에게 대패(4137 vs 5347)하며 그대로 시즌을 마감했다. 이후 14시즌 스텔라 21위(14승 21패), 15시즌 스텔라 35위(4승 31패)로 추락하며 부문 결선조차 오르지 못하고 완전한 몰락의 길에 걷고 말았다.[12]
부문 리그에서 조별 리그로 처음 변경된 16시즌 역시 고전을 면치 못하였다. 128강(토파즈 그룹)은 2승 1패 조 2위로 통과했지만, 바로 다음 라운드인 64강(루비 그룹)에서 0승 3패 조 최하위로 탈락했다. 17시즌에는 아쿠아마린(120강)에서 5승 0패로 조 1위를 차지해 오랜만에 기간 전승을 거두며 활약할 가능성을 보였다. 하지만 토파즈(96강)에서 2승 3패로 턱걸이 통과를 하며 기세가 꺾이고 말았고, 자수정(72강) 0승 5패, 사파이어(60강) 1승 4패로 연달아 크게 부진했다. 다행히 두 기간 모두 패자부활전에서 승리하여 통과하긴 했으나 에메랄드(48강)에서 또다시 0승 5패 조 최하위의 성적을 받으며 승수 부족으로 패자부활전 없이 탈락 확정. 최종 8승 17패로 48위의 성적을 거두었다.
18시즌에는 아쿠아마린(120강)과 토파즈(96강)를 연이어 4승 1패(조 2위)의 성적으로 통과하고, 자수정(72강)까지 3승 2패를 거두며 매우 안정적인 모습으로 시즌을 풀어나갔다. 무난한 중견 강호 수준의 활약을 벌이던 유키는 사파이어(60강) 라운드에서 믿을 수 없는 대사건을 터뜨리게 된다. 사파이어 3경기에서 유키는 모토계의 여제 렘과 격돌했다. 렘은 지난해(17시즌) 정규리그 1위와 아쿠아마린을 연이어 차지했으나 결선 8강에서 카토 메구미에게 통한의 업셋을 당하며 우승을 놓쳤다. 렘은 작년의 한을 풀듯이 이번에도 정규리그 1위와 아쿠아마린을 압도적으로 석권하며 그 어떤 캐릭터도 따라갈 수 없는 절대적인 강함을 선보였다.
그런데 유키가 그런 렘에게 희대의 업셋승(2955 vs 2561)을 거두었다! 당시 모토계의 여제이자 불패의 상징으로 이름을 떨친 렘이었고, 그녀가 데뷔 12년차가 넘어가는 나가토에게 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에 모토계 전체를 뒤흔든 대사건이었다. 이후 그녀는 당당히 조 1위로 사파이어 기간을 통과했지만, 에메랄드(48강)와 루비(36강)에서 연달아 2승 3패를 거두는 부진 끝에 루비 패자부활전을 넘지 못하고 정규리그 19위(19승 11패, 63%), 최종 25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유키는 마지막 불꽃과도 같았던 이 18시즌에 결선 재진출이라는 염원을 이루지는 못했지만[13] , 18시즌 국사모 우승자 렘에게 유일하게 승리를 거둔 캐릭터라는 더 없을 영광을 얻을 수 있었다.[14]
5.7. 명경기[편집]
이처럼 나가토 유키는 국사모 역사에 길이 남을 명경기를 많이 만들어낸 것으로도 유명한데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경기들이 있다.
- 2008 토파즈 6경기 - 나가토 유키 314 vs 289 페이트 테스타로사 : 이 해 우승자 페이트가 당한 가장 큰 패배
- 2008 사파이어 4경기 - 나가토 유키 406 vs 65 히토츠바시 유리에 : 역대 국사모 정규시즌 득표율 1위(86.1%)
- 2008 패자조 6R - 나가토 유키 700 vs 459 히이라기 카가미 : 국사모 포스트시즌 사상 유일한 리업셋 경기
- 2008 최종 결승 - 나가토 유키 956 vs 1220 페이트 테스타로사 : 기념비적인 제 1회 국사모 결승
- 2009 통합 16강 - 나가토 유키 2053 vs 1814 아이사카 타이가 : 2009 사이모에&최모토 동시 석권자 격퇴
- 2009 승자조 8강 - 나가토 유키 1429 vs 1119 스즈미야 하루히 : 2년 연속 하루히 잔혹사의 결정타
- 2009 패자조 4R - 나가토 유키 1687 vs 1536 페이트 테스타로사 : 지난해 결승 리벤지매치 승리
- 2011 자수정 결정전 - 나가토 유키 1996 vs 1829 유클리우드 헬사이즈 : 2번째 목걸이 수성자 타이틀 획득
- 2011 루비 6경기 - 나가토 유키 3256 vs 3253 샤나 : 샤나를 상대로 거둔 첫 승리& 정규리그 최고 순위 갱신(3위)
- 2011 결선 8강 - 나가토 유키 5114 vs 5606 고코우 루리 : 유키와 쿄애니 중흥의 꿈을 저지당한 통한의 패배
- 2012 자수정 7경기 - 나가토 유키 4227 vs 3951 미사카 미코토 : 미코토의 스텔라 전승 우승 저지
- 2012 결선 16강 - 나가토 유키 5166 vs 3866 코우사카 키리노 : 5년 연속 8강 진출의 대업 달성
- 2018 자수정 3경기 - 나가토 유키 4623 vs 4136 유우키 아스나 : 지난해 3위를 상대로 거둔 승리, 마지막 불꽃의 시작
- 2018 사파이어 3경기 - 나가토 유키 2955 vs 2651 렘 : 모토계 2대 여제 렘의 전승 우승 저지, 마지막 불꽃의 하이라이트
- 2018 루비 4경기 - 나가토 유키 19731 vs 14805 토오사카 린 : 타입문 몰락의 쐐기를 박은 승리, 마지막 불꽃의 끝
6. Baidu Harem Moe[편집]
![파일:2011 바이두 모에 나가토 유키.png](http://obj-temp.the1.wiki/data/3230313120ebb094ec9db4eb919020ebaaa8ec979020eb8298eab080ed86a020ec9ca0ed82a42e706e67.png)
7. Bilibili Moe[편집]
2세대 메이저 모토 Bilibili Moe의 경우, 2015년에 나가토 유키짱의 소실이 방영된 덕에 출전 기회를 얻었다. 128강 4인 조별리그에서 센조가하라 히타기를 상대로 신승(22720 vs 22459)을 거두며 32강 결선 토너먼트에 오르는데 성공하였다.[16] 비록 32강에서 마키세 크리스에게 패배(39681 vs 53264)해 그대로 탈락하며 최종 27위로 대회를 마쳤지만, 유키는 이 대회에서 타입문을 제외하고 32강에 진출한 유일한 2000년대 초중반 출신 캐릭터였다.
8. Best Girl Contest[편집]
또다른 2세대 메이저 모토 Best Girl Contest에서는 많이 아쉬운 활약을 펼치고 있지만, 1회 대회(2014)부터 10회 대회(2023)까지 개근을 달성하는 위엄을 보여주기도 했다. 연도별 결과는 차례대로 1회 64강, 3/5회 128강, 2/4/6/7/8/9회 256강, 10회 512강 탈락이다.
[1] 당장 쿄애니 3대장부터 유키를 제외하고 전원 멸족당했고, 국사모 1, 2대 우승자였던 페이트 테스타로사와 카츠라 히나기쿠마저 피해가지 못했던 것이 1차 대멸종이다. 유키를 제외하면 2008년 이전 데뷔 캐릭터 중에서는 샤나와 타입문만이 이 1차 대멸종을 견뎌냈다고 평가받는다.[2] 마마마의 경우 각종 대회에서 우승후보로 활약한 기간이 1년 남짓에 불과하였고, 샤나, 고코우 루리, 아이사카 타이가 등은 미코토 휘하 JC 진영 소속이었으며, 타치바나 카나데는 진영이 없었다.[3] 저들 중 그녀와 가장 많이 비교되는 건 히나기쿠로, 유키와 같이 당시 모토계명예1인자 샤나와 큰 대회에서 영혼을 건 맞대결을 자주 펼쳤기 때문이다. 둘을 비교하면, 히나기쿠는 샤나의 메이저 대회 재패를 2번이나 막아섰다는 점이, 유키는 이미 사라진 히나기쿠와 달리 10년대 중반까지 주류에서 놀았던 점이 우위.[4] 2008 국사모 아유/마이전은 단 2개의 업셋이었지만 유키를 정규시즌 1위에서 6위까지 끌어내릴 정도로 파급력이 컸다. 아유는 16강조차 진출 못하는, 마이는 미쿠루에게도 지는 약체였다.[5] 2009 최모토 8강 카가미전의 경우 희대의 진영 개싸움 촌극으로 불릴 정도로, 카가미가 최정점에 있었던 2008년이라면 몰라도 세가 약해진 2009년의 그녀가 승리하는 것은 하늘이 뒤집어져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까지 평가될 정도로 당시 둘의 체급 차이가 컸다. 4강전 상대가 클라나드 최약체 우시오, 결승전 상대가 당시 유키만 만나면 사족을 못쓰던 아이사카 타이가였음을 고려하면, 오히려 2008 국사모 이상으로 2009 최모토는 진영 개싸움 탓에 유키가 억울하게 우승을 놓친 메이저 대회였다.[6] 다만 06년도 최모토에선 진영 자체가 쌩신인이라 하루히 vs 나가토 팬덤 사이의 우위가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태였고, 08년도 국사모 결승이 열릴 즈음엔 페이트가 최후의 중흥을 맞이한 데다 승자조에서 기다리며 진영 싸움을 피한 어드밴티지가 있었기에 유키가 체급은 높았을지언정 승리 가능성은 반반이었다.[7] 에루루 534 - 나가토 397 - 하루히 149[8] 2013년 이후에는 공식 최종 순위가 없어 부문 순위와 제거 라운드에 따라 자체 산정.[9] 사실 사파이어 기간에 샤나에게 당한 1패를 제외하면 모두 유키가 승리할 수 있는 경기였다. 토파즈 기간 츠키미야 아유는 정규리그 23위로, 대체 유키를 상대로 어떻게 승리를 거둔지 전혀 추측조차 되지 않는 업셋이었고, 자수정 기간에는 리그 2위 사카가미 토모요와 무승부를 거두는 사투 끝에 연장전에서 6표 차이로 패배했다. 루비 기간에는 리그 14위 카와스미 마이에게 6표차의 업셋을 당했고, 다이아몬드 기간에는 리그 5위 후지바야시 쿄에게 15표라는 근소한 차이로 패배했다. 이 4번의 경기 중 2번만 유키가 승리했다면 유키는 초대 정규리그 1위라는 다시 없을 영광을 얻을 수 있었다.[10] 유키가 상위권 반열에서 완전히 밀려난 14시즌 이전 기간 중 유일하게 유키가 패배를 더 많이 기록한 기간이다. 이 다이아몬드 기간에서 유키는 역대급 졸전을 벌이고 말았는데, 정규시즌 2위 하루히나 5위 스이긴토에게 진 건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리그 20위 이부키 후코에게 16표차, 리그 24위 산젠인 나기에게 27표차, 리그 15위 신쿠에게 116표차로 연달아 3번을 털렸다. 지난해 준우승자라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수준의 처참한 경기력이었다. 다이아몬드 기간이 정규리그의 마지막 기간인 만큼 유키의 올해 포스트시즌 전망 역시 최악으로 평가되었는데, 당시 포럼에 올라온 분석글을 보면 시드 배정용 16강부터 타이가에게 털릴 것이라는 예상이 꽤 있을 정도였으니...[11] 2022년, 국사모가 폐지된 시점에서도 유키 이래로 이 기록을 달성한 것은 시이나 마시로 단 1명뿐일 정도로 국사모 내에서 엄청난 기록이다.[12] 사실 노장들이 활약하기 쉬운 국사모라 몰락 수준에 그쳤지, 그 외부에선 12년 말-14년 초에 걸쳐 2000년대의 강호들이 모조리 멸종했다. 그 멸종에서 꽤 오래 버틴 유키조차 외부 모토 수상은 13년도가 마지막.[13] 이 18시즌을 끝으로 유키는 국사모에서 더 이상 활약하지 못했다. 19, 21, 22시즌은 예선에서 탈락했고 그나마 본선에 오른 20시즌도 아쿠아마린(96강)에서 광탈했기 때문.[14] 결국 모토계의 여제 렘은 칸나, 마시로, 아스나와 같은 3~4세대 강캐가 아닌 1세대 나가토 유키에게 패배를 당함으로써 타치바나 카나데에 이은 2번째 국사모 전승우승에 한 끗 차이로 끝내 실패하고 말았다.[15] 공교롭게도 나가토를 이긴 둘은 각각 그 해의 우승을 차지했다.[16] 비록 국사모에서 유키가 매번 히타기를 너무 압도적으로 털어버려서 간과되지만(2014년 기준 국사모 전적은 4 대 0으로 유키의 압승), 당시 히타기는 2012 최모토 우승을 거머쥐고 14, 15, 16시즌 BGC에서 3연속으로 4강에 이름을 올리는 등 최전성기를 구가하던 상태였다. 절대 얕볼 상대는 아니었다는 것.